❄️ 12월의 청라언덕: 멈춰진 시간 속, 붉은 사과와 봄의 기약
화려한 단풍도 지고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2월의 중순, 대구의 근대 역사가 숨 쉬는 청라언덕을 찾았습니다.
'청라(靑蘿)'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겨울의 언덕은 푸른 담쟁이덩굴 대신 앙상한 가지들만이 붉은 벽돌집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조금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이었지만, 그 빈 공간을 채우는 특유의 고요함과 정감 어린 분위기가 오히려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 고즈넉한 선교사 고택의 겨울
푸른 잎이 다 떨어진 자리에 드러난 선교사들의 고택은 더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붉은 벽돌 건물들.
겨울 특유의 차분한 공기 속에 잠겨있는 그 모습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깊은 고즈넉함이 느껴졌습니다. 화려함이 걷힌 자리에 비로소 보이는, 꾸미지 않은 본연의 아름다움 같았달까요.

🍎 앙상함 속에 맺힌 붉은 생명
언덕을 걷다 마주한 사과나무 한 그루. 대구 사과의 시초를 기리는 이 나무 역시 겨울을 피해 가지 못해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메마른 가지 끝에 작고 빨간 열매가 기적처럼 매달려 있더군요. 잿빛 겨울 풍경 속에서 발견한 그 붉은 점 하나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마치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도 생명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 세월을 버틴 종탑, 그리고 동무생각
발길을 옮겨 오래된 종탑 앞에 섰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다소 아슬아슬하게 보존된 종탑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역사의 무게를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주한 '동무생각' 시비.
"청라언덕과 동산 앞에 마주 서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그 가곡을 나지막이 흥얼거려 보았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려 흩어지는 멜로디가 옛 선교사들과 학생들의 그리움을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 다시 만날 봄을 기약하며
푸른 담쟁이덩굴이 넘실대는 '진짜' 청라언덕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겨울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적막과 여백의 미가 참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일지라도, 언젠가 이 앙상한 가지에도 다시 푸른 잎이 돋아나겠지요? 벽돌집이 온통 푸른 담쟁이로 뒤덮일 내년 봄, 따스한 햇살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때는 붉은 사과 대신, 푸른 생명력이 가득한 청라언덕을 만날 수 있기를.
- 🗓️ 방문 시기: 12월 중순
- 🍂 분위기: 겨울의 쓸쓸함 속 따뜻한 정감, 사색하기 좋음
- 📍 위치: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 역 인근)